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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국 화백, ‘디지털 아트’ 창시자 오진국 화백의 무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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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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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렌탈로 일반인도 즐겨야죠”

 

우리나라 ‘디지털 아트’의 창시자인 오진국 화백은 70세를 훌쩍넘긴 나이에도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그는 국내 100인의 대한민국선정작가 중 1인으로 제30회 현대미술대상 수상은 물론, 동 위원회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현대회화의 거장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컴퓨터 회화 선구자로 작품 활동을 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혼합한 ‘디지로그’ 작품으로 우리나라 화단의 역사를 최초 장식했다.

 

오 화백의 정신적 멘토는 바로 前 문화부 장관인 故이어령 박사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고등학생 시절엔 전국 13개 미술대회에서 11개의 최고상을 휩쓸었다. 불가피하게 붓을 놓고 대기업 임원을 거쳐 건설업을 창업했지만 외환위기때 사업을 접으면서 30여년간 눌렀던 예술 혼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서양화를 공부했던 그가 미술계에 다시 자리잡기란 현실적으로 만만치가 않았다. 이어령 박사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세계 예술과도 대적할 수 있는 다른 화가들이 하지 않은 ‘디지로그’라는 무기를 일러줬다.

 

그때부터 오 화백은 고시생처럼 컴퓨터아트에 매진했다. 오 화백은 “그림은 대충 그려서 될 일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해도 1000/1로 진입하기가 어렵다. 30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열배 노력하며 나만의 싸움을 했다”고 회고했다.

 

10여 년간 수입 한푼 없이 컴퓨터 공부에 매진한 그결과 한국화단 최초로 디지털로 컴퓨터 아트를 선보였다.

 

이어령 전 장관은 일찍이 오진국 화백을 이 시대에 보기드문 선구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명하였다.

 

디지로그 아트 하나만을 위해 무한질주 해온 오 화백은 디지털의 차가운 감성과 예리하고도 섬세한 인간애가 넘치는 아날로그의 훈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특수 제작된 한지재료로 국한하고 금속재료·목재·화장품 파우더 등 100여 종이 넘는 오브제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새로운 도전을 선보였다.

 

오진국 화백은 소장의 가치보다 감상의 가치가 우선 한다고 역설한다. ‘오진국컬쳐TV’를 개설해 그림을 해설하고 읽어주는 독자적인 채널을 구축해 미술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근 시작한 미술품 렌탈 사업은 관공서나 병원 등에서 저렴한 렌탈을 통해 미술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 화백은 최근 평면 작품도 새롭게 시도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2023년 아트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2022년 11월 29일 동아경제 홍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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