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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자기 명장을 찾아서] 장휘요 최인규 명장- 도자기는 예술성과 시대성을 담아야
    청자상감당초화문대반 대통령상 수상…인적자원 육성 시급 벽옥 최인규 명장은 43년 도자기를 빚으며 확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장인이다. 2005년 이천도자기 명장으로 선정됐고, 2007년 제32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청자상감당초화문대반(靑磁象嵌唐草花文大盤)’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청자 장인으로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0년대 초반 서울공업고등학교 요업과에 다녔던 최인규 명장은 ‘푸르고 옥 같은 도자기를 만들라’는 의미의 ‘벽옥’이란 아호(雅號)를 은사에게 받았다. 이후 군 제대후 도자기 장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그는 30여년간 해강 (故)유근형 선생을 사사했다. 최인규 명장은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도예기술과 기본기를 익히는데 열중했다. 또한 고서를 참고하고, 박물관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발로 뛰는 답사를 통해 지식의 탑을 쌓아왔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백자, 청자, 분도 등 전분야를 섭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적 현실에 맞는 자기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 탄생된다”고 설명했다. 스승 아래에서 흙, 불과 씨름하던 그는 스카웃 제의도 거절하고 1992년 독립해 작업장을 차리고 2002년에는 장휘요를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도자기 연구와 제작에 몰두하며 해강 선생의 형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대표작인 청자상감당초화문대반은 이렇게 5년간의 인고끝에 탄생했다. 도드라진 타원들이 밖을 향해 은은한 곡면을 뽐내는 이 작품은 둥근 대반이 정확이 5등분되어 있다. 또한 바닥 한가운데 원이 하나가 존재하는데, 이는 오대양 육대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계를 호령하며 떨쳐나가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담아낸 것이다. 당초문, 대나무, 구름, 학, 석류, 모란 등 전통적인 문양이 끊이지 않고 담겨 고려청자의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최 명장은 “청자에는 우리민족의 정서가 담겨있다. 특히 옛 선인들의 은은한 비취색과 문양을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성을 반영해야 된다. 그래서 개구리 발, 죽순, 물고기 등의 문양을 재해석하는 등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방식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작품은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30여년간 그림, 잡지, 신문조각을 수집 응용해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특한 창작으로 선과 문양을 만들어 냈다. 밤낮으로 도자기에 대한 생각과 열정이 나를 지배했다. 전시회·개인전에 출품된 내 작품을 보고 남들이 아름답다고 칭찬해주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라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전승도예협회 회장이기도 한 최인규 명장은 우리 도예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한국 도자기는 유려한 선, 섬세한 투각, 청명한 빛과 그윽한 깊이를 갖춰 서양도자기에 비해 위치가 높은데, 많은 사람들이 작품 가치를 몰라봐 안타깝다”면서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조합(협회)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직업성을 갖고 장인이 될 수 있도록 환경조성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년, 20년 후의 우리의 전통 도자기 문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2015년 5월 19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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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名酒를 찾아서] (주)甘紅露 이민형 대표·이기숙 식품명인 부부, 조선시대 3대 명주 ‘甘紅露’
    8가지 한약재를 2번이상 증류…맑고 감미로운 향과 맛의 약용주 ‘감홍로’는 조선 정조 때의 북학파(北學派) 학자 유득공과 육당 최남선은 저서인 ‘경도잡지(京都雜志)’와 ‘조선상식문답’에서 각각 우리나라 3대 명주(이강고, 죽력고, 감홍로) 중 최고로 꼽은 술이다. ‘감홍로’를 계승·발전시키는데 여념 없는 이기숙 식품명인과 (주)甘紅露 이민형 대표 부부를 만나 보았다. 이민형 대표는 “우리 부부는 실향민 2세다. 장인어른이신 故이경찬 옹은 ‘문배주’와 ‘감홍로’ 등 전통주 제조로 중요무형문화재로 활동해오다가 1993년 돌아가셨다. 고급 전통주는 문화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감홍로의 맥이 끊이지 않기 위해 우리부부가 재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기숙 명인은 “‘감홍로’는 일제시대 이전 맥이 끊긴 것을 아버지께서 집안에 내려오는 제법에 따라 80년만에 재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단순한 술로 취급하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서 전통제법을 잘 보존해 아이들에게 물려주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홍로’는 고려시대 몽고에서 유입된 증류주로 평양을 중심으로 관서지방에 널리 보급되었다. 감홍로(甘紅露)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감(甘)은 단맛을, 홍(紅)은 붉은 색을, 로(露)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서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으로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미각, 시각, 후각을 만족시키는 술이다. ‘감홍로’가 고급술이라는 인식은 춘향전의 이별장면에서 ‘질병에 감홍로(겉모양은 투박하나 내용물은 귀하고 아름답다)’라는 표현과, 별주부전에 별주부가 토끼를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다’고 가자고 꼬드기는 장면 등 많은 구절에 전해오고 있다. 이민형 대표는 “감홍로는 조선 중기 의학서적 ‘식물본초’에도 언급되었다. 특히 명주들은 약용작용이 강해 상비약으로 복용했다”며 “소주나 보드카, 위스키 등은 도수는 높지만 장을 차갑게 한다. 그러나 감홍로를 마시면 장을 따뜻하게 해 음주 후 숙취가 없고 몸이 따뜻해 컨디션이 좋다”고 말했다. ‘감홍로’의 제조는 길면 1년 4,5개월이 걸릴 정도로 정성으로 제조된다. 우선 조 고두밥을 원료로 밑술을 만들고, 누룩과 물을 섞어 8일간 발효한 다음 두차례 증류한다. 여기에 용안육, 계피, 진피, 방풍(현재 미사용), 정향, 생강, 감초, 지초 등 8가지 한약재를 넣어 한달 이상 침출시킨 후 재증류 한 후, 1년여를 보관·숙성시켜 완성된다. 이기숙 명인은 “우리는 전통방식을 따르기 위해 증류도 감압식 증류가 아닌 화덕식으로 증류하고 있다. 저희가 만드는 기법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술을 빚던 제법과 유사하다”며 제조에 전통과 정성이 담겨있음을 강조했다. 이민형 대표는 “법인을 2005년 설립해 2006년부터 제조하고 있다. ‘감홍로’는 일반 주류 시장과는 좀 다르기 때문에 판매에 애로가 있다.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우리술방)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감홍로’가 다른 전통주와 달리 칵테일로 제조되면서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매출처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올해 바텐더협회에서 바텐더 시험을 보는데 ‘감홍로’가 채택되었다. 앞으로 국내 전통 명주들로 구성된 한국형 바를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5천년 역사의 우리문화에 걸맞은 고급 명주들이 있음을 알려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감홍로의 맥을 이어가는 이민형(左) 대표와 이기숙 명인. /2014년 8월 21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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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명인 초대석]일정 최종만 '서예는 작가의 혼을 담아내는 예술'
    '能忍最寶'…참을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보배다 오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먹을 갈면서 생활 속에서 선을 수행하는 서예가가 있다. 일정 최종만 선생. 그는 수저 이상으로 붓은 자신의 손에 친숙한 일상의 생활도구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붓을 잡는 일은 즐겁고 신명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선 먼저 붓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붓은 단순히 선과 획을 긋는 행위가 아니다. 작품에 임할때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비우고 손이 아닌 영혼으로 붓질을 하게 된다고한다. 일정 선생은 "문화가 인간의 영혼을 담는 질그릇이라면 서예는 문화라는 질그릇에 인간의 영혼을 담는 것”이라며 “다양한 서체는 그릇의 모양이고 내용은 작가의 정신이다"라고 말한다. 40여 년간 붓과 동락해 온 일정 최종만 선생의 서예에 대한 남다른 지론이다. 그는 27세 때 서예계 큰 별 학남 정환섭 선생 밑에서 먹을 갈며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981년 국전에 입선한 후 10여 년간 자신을 수양해 왔고 1996년, 1997년에는 대한민국 서예대전에서의 특선을 계기로 다양한 수상경력을 쌓으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17회) 심사위원을 비롯해 크고 작은 숱한 서예전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지난 5월에 열린 제21회 대한민국 서예대전(2천400점 중 전서204점)전서부문 심사위원을 맡았다. "서울지역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입선 작품들이 이번 대회에서는 각 지역에 골고루 안배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일정 선생은 "국내에 전서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작가들의 한획, 한점에 무심히 먹을 흘려버리는 것이 아닌 먹의 조화와 붓의 리듬으로 여백과 선에 작가의 혼을 담아내는 예술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서예 글자에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 5체가 있다며 한자는 상형문자부터 생겼기 때문에 처음 글씨를 배울 때는 상형문자부터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물질만능주의에 경도돼 과학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우리 것'을 등한시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요즘은 서예를 가르치는 학교가 거의 없다. 정적인 교육을 못 받으니 예도가 없는 것이다. 서예를 배우면 예도는 자연히 따라온다. 인성교육 면에서 서예를 따라 올 게 없다"며 서예, 예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제자들에게 수시로 당부하는 말이 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타산적으로 살지 말고 좀 어리숙하게 살아라"고 말할 정도다. "예술은 노동의 시간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다. 그림도 문학도 서예도 모두 보는 이와 공감대가 형성돼야만 진정한 작품"이라며 "설명이 필요한 글씨가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작품을 위해 공부할 것"이라 말한다. 서예계의 중견작가로 주위의 칭찬과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아직은 100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가야할 길이 아직은 멀다"며 겸손해 한다. 사진설명 : 일정 최종만 선생이 '能忍最寶(능인최보)'라는 글귀를 설명하고 있다. /동아경제 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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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명장을 찾아서] 수곡 손대현 명장, 나전칠기 세계화에 팔 걷었다
    50여년 식지 않는 옻칠 열정…전통문양 모티브로 현대감각·실용성 살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옻칠장 수곡 손대현 명장이 나전(螺鈿)과 인연을 맺은 지 50여년. 옻칠방 문턱을 넘을 때면 두근거리는 그의 가슴은 식지 않는 그의 열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손대현 명장은 10대 중반에 옻칠에 심취되면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 민종태 선생(故) 문하생으로 입문, 기술과 정신을 배웠다. 손 명장은 “선생님은 작품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고려시대’ 기법의 틀을 절대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셨다. 옻칠은 칠하고 말리고 갈아내는 과정의 반복이 섬세하게 이뤄진다. 이 때 한 과정이라도 빼먹거나 소홀히 하면 그 작품은 분명히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작품속에 나타나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예를 들면, 일본 바이어가 선생님께 찾아와서 ‘차도구’에 일본식 문양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는 일본문양을 똑같이 하고 싶지 않고, 또한 시키는 대로 작업을 한다는 데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특히 선생님은 어떠한 작품속에도 우리 고유의 정서와 숨결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나전은 무지개 빛, 금 빛을 내는 전복과 맑고 투명한 빛을 내는 소라류의 조합과 그 위에 옷칠을 더함으로써 신비롭고 영롱한 무늬와 빛깔의 문양을 만들어낸다. 송곳·가위·실톱 등으로 자개를 문양대로 오려내는 주름질 기법과 패각을 얇게 선으로 잘라 문양대로 칼로 끊는 끊음질기법 등이 사용되어 다양한 문양을 조합해낸다. 특히 장소·빛·시간 그리고 관조자에 따라 오묘한 색변화를 가져온다. 그래서 나전에 매료된 일본 등 외국인들이 나전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아오는 발길이 잦다. 손 명장은 “나전은 고려시대 때 칠기의 기법으로 완성되어 더 이상의 기법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전통문양의 소재를 찾아 재해석 한 후 탄생되는 새로운 문양과 디자인은 이 시대에 맞게 현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명장은 부귀다남 십장생, 사군자, 불로장생도, 당초문양 등 셀 수 없는 문양을 갖고 있으며, 또한 그의 칠은 색감과 질감 모두 뛰어나고 매우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대표작인 ‘귀갑문건칠화병’은 기술의 난이도가 높고 견실해 최고의 미려한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다. 손 명장의 작품은 외교선물로 자주 사용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는 옛 당초문양을 모티브로 새로운 나비당초문양을 만들어 유럽순방 때 7개국 정상에게 선물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일본 천황에게 ‘쌍희(喜)’라는 우리 전통문양에 학이 어우러진 보석함을 만들었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방한 때는 십장생이 들어간 나전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손 명장은 나전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기업과도 많은 작업을 진행했다. 한 예로 지난 2011년 BMW와 협력해 차 내장재에 나전으로 장식해 호평 받았다. 또한 삼성이 개발한 102인치 PDP TV에 일본 유명 전자업계 CEO 영문 이름을 나전칠기로 작업해 선물했다. 또 중동 부호에게 수출할 제품에도 나전장식이 들어간 바 있다. 기존의 나전이 보석, 서류함, 가구 등에만 적용됐던 것에 비해 그 활용도가 높아진 것이다. 손 명장은 “좋은 소재에 옻칠을 해서 인테리어적인 측면 등 충분히 발전가능성이 무한하다. 나전의 우수성을 알리고, 저변확대와 후진양성을 위해 서울대, 전통공예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또 해외전시회 등 기회가 있으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나전의 활성화와 산업화를 위한 정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곡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손 명장은 1991년 대통령 표창을 비롯 다양한 표창을 받은바 있으며, 1991년 제1호 나전칠기 명장으로 선정된 바 있고, 1996년 문화재 수리기능사 지정, 1997년 무형문화재 14호, 1999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1호 옻칠장으로 선정되는 등 화려한 이력을 바탕으로 국내외 전시회 참여를 통해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사진설명: 서울시 무형문화재 (옻칠 명장)인 손대현 명장이 나전칠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3년 10월 10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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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名匠을 찾아서] 효천 권태현 명장, 생활도자기로 한류 바람 일으키다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 감각표현…작업 공정개선해 대중화 앞장 “예술의 길은 고독한 가시밭길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가면 그보다 아름답고 보람된 길이 없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흙과 불을 쫒아 40여년 가까이 도예와 함께해온 대한민국 세라믹도자기 명장 효천 권태현(사진)선생의 인생과 도자기 예술에 대한 반추이다. 권태현 명장은 젊은 시절 주물과 금속공예로 잔뼈가 굵었다. 공예에 대한 기본지식이 풍부하고 손재주가 뛰어났다. 특히 그는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청자와 백자의 대가였던 고(故)지순택 선생 밑에서 제조방법, 디자인 및 소재 개발 등 일을 배웠다. “저 역시 근본은 백자와 청자다. 이러한 근본을 바탕으로 ‘나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생활 속에 전통자기의 대중화를 위해 생활자기나 소품 등 대중적인 제품을 통해 전통의 맥을 잇고자 지금까지 달려왔다” 도예는 작가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힘은 단 50%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미술작품과 도예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아무리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을 가마에서 구울 때 실수를 하면 모두 물거품이 된다. 권태현 명장은 도자기를 불에 굽는 과정을 ‘불과의 대화와 교감’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이 단순히 불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불과 소통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권 명장은 “단순한 도자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작가가 만든 작품 안에는 그 작가의 철학이 녹아 있다”며 “전통공정의 도자기는 하나의 명품, 특정인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희귀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권 명장은 성형작업과 가마 작업에서 전통적 방식의 공정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만 현 시대 배경에 맞는 문양과 작업 공정개선을 통해 도자기를 대중화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권 명장이 제작하는 생활도자기와 소품들은 청자(백자)를 바탕으로 한 투각기법을 이용한 작품이 많다. 이 투각기법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기술이다. 숙련된 도예가 외에는 쉽게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다. 그는 1986년 도자기의 다공투각형 성형방법을 개발(특허)해 투각기법을 손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공정상의 개선은 낮은 생산원가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높은 심미안을 만족시키는 디자인으로 도자기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토기는 숨을 쉰다. 수천년을 한결같이 살아서 시간과 공간을 담아 오늘에 다다른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라며 “그릇에 담긴 시간과 공간, 또한 살아서 역사가 된다”고 권 명장은 전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다만 이 시대에 전통으로 다시 숨쉬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전통은 멍에가 아니라 뿌리와 기본 바탕이 되는 것으로 모방과 흉내 내기가 아닌 시대와 개성을 담아내는 것이 현대도예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전통은 오래되고 깊을수록 현대 도예의 좋은 자양분이 되고 미의식의 뿌리가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도자기는 오랜 역사를 갖고 발전해왔지만 현시대에는 세계에 크게 알려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때문에 효천 권태현 명장은 생활도자기와 소품들이 우리 민족의 도자기 발전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3년 5월 29일 동아경제 강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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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전통도예가] 예송요 유기정 명장, 분청도자에 美와 생명을 불어넣다
    32년 전통도자 발전의 외길인생 걸어온 이천시 대표 도예명장 전통도자 발전을 위해 배움과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의지의 장인. 이천시 신둔면 소정리에서 예송요를 운영하고 있는 유기정 명장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도자기를 빚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예송 유기정 명장은 1975년 도암 지순택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성형의 기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도자기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송월 김종호 선생, 임항택 선생 밑에서 태토, 성형, 조각, 화공, 유약, 소성 등 도자기 제작 전 과정을 섭렵 후 1995년 자신의 호를 딴 예송요를 설립했다. 그간 여러 스승들에게서 배운 다양한 경험은 청자, 백자, 진사, 분청에 이르기까지 알토란같은 지식으로 승화되어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유 명장은 “도예문화는 우리민족의 예술로, 그리고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세계 속에 한국인의 얼과 솜씨를 자랑해 왔다”며“ 전통도자기를 제작할 때는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작가의 개성을 살려 작품 속에 혼을 실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유명장의 작품 속에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발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분청·청자, 생활자기, 전통 다기 등 도자예술을 구현하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을 보면 맑게 빛나는 눈동자와 같은 신비와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갖가지 형상이나 이미지가 색유를 매재로 하여 조화롭게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기정 명장은 도자기는 열연으로 소성되어 나오는 불의 예술이며,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와 숨결이 배어있는 체험과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한다. 그는 “도자기는 열연으로 소성되어 나오는 불의 예술이며,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와 숨결이 배어있는 체험과 기다림의 미학”이라며 “분청은 은은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감이 있어 문양과 표현이 다양하고 고급스럽다”고 말했다. 유기정 명장은 전국기능경기대회, 전국공예품대전, 강진청자공모전, 황실공예지평선대전 등 40여 대회에서 입상했고, 2006년 경기으뜸이 선정에 이어 2009년 황실문화재단 황실공예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에는 이천시 도자기 명장으로 선정되며 이천시의 도자문화를 대내외에 알리는 선봉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분청사기 상감화문호’가 꼽힌다. 1991년 제26회 동아공예대전 수상작으로 이 작품은 넉넉한 자태의 분청사기 항아리에 꽃잎을 조각하고 잎사귀는 상감으로 처리 부조적 느낌을 준다. 들꽃 문양을 도안화해 여성적인 수수함과 서민적인 여유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유기정 명장은 이천시의 도자기축제와 도자클러스터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젊은 사람들이 선보이는 현대공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며 도자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천시에 도예과가 있는 대학유치와 전통도예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어느덧 이천시 명장을 넘어 대한민국 명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유기정 명장. 강진 청자박물관, 이천시청, 명지대 총장실, 노르웨이 대사관, 중국 경덕진 박물관, 그리고 이달에는 러시아문화원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우리도자기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국내외에 알리는 등 전통도예 활성화를 위해 조각가인 부인(조경례)과 함께 디테일한 기법을 전개하고 있다. /2012년 11월 14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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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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