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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장을 찾아서] 송림 임충휴 명장, 나전칠기 세계화·대중화 팔걷어
    50여년 식지않는 열정 쏟아…후진양성위해 재능 기부 송림(松林) 임충휴 명장은 초등학교 졸업후 완도에서 무작정 상경해 칠기공방에 입문, 자개의 빛깔에 매료돼 지금까지 50여년 나전칠기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고 있다. “나전칠기는 나의 분신이며 삶의 전체가 되었다”고 말하는 임충휴 명장은 지난 2004년 전통 칠기부문에서 대한민국 명장(제384호)으로 선정됐다. 나전칠기의 기본적인 제작공정은 25가지,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손길을 거쳐야한다. 임 명장은 전통방식의 문양과 공정을 답습, 재현하면서 재창조하다보니 작품에 따라 완성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대표작으로는 12자 금장 십장생 장롱, 주칠 당초무늬 장식대, 선유도 장롱, 일월도 등이 있다. 옻칠은 칠액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돼야 제대로 된 광택이 살아난다. 또한 옻을 말리는 것은 열을 가하는 방법이 아닌 온도 25∼30℃, 습도가 80%이상인 곳에서 표면이 굳어지므로 온습도에 민감하다. 이처럼 옻칠을 한 나전칠기는 반영구적이라 할 수 있어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든다. 임충휴 명장은 “옻칠은 친환경이고, 방충·방습 효과가 뛰어나다. 소비자들은 나전칠기 하면 자개장식만을 떠올리고 선호하는데, 옻칠을 해야 향이 나고 균도 잡아준다”면서 칠기의 생명은 곱고 투명하게 옻칠을 하는 정성과 실력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거듭 그는 “자개도 조개껍질이 다양하고, 기술도 많이 발전돼서 변화가 많이 됐다. 해외에서도 우리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있는데, 지금 젊은 소비자들은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모른다”면서 “IMF외환위기 이후 국내 중산층이 무너지고, 붙박이장이 또 대세가 되다보니까 더 어려워 졌다. 예전 서울·경기에 1000여개 정도의 전문업체가 다 무너지고 지금은 70~80여 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의 지원없이는 나전칠기의 명맥을 잇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임충휴 명장은 3년전부터 남부기술교육원에 재능기부를 통해 150여명 정도의 제자들을 배출했다. 임 명장은 “후진양성이 제일 큰 보람이다. 제가 IMF금융위기 때 어려움을 겪고 업계를 떠날까 고민도 했다.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하고 재기의 붓을 잡았다. 이후 2004년에 명장이 되면서 후진양성을 통해 이 분야를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야심으로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며 “돌아보니 업계에 남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거듭 그는 “앞으로 우리정부가 관심을 갖고 젊은이들이 나전칠기 기술을 배우고 창업할 때 창업자금과 해외 전시 참여를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전통과 현대성을 융합,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고 글로벌 시장도 개척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강조했다. 임충휴 명장은 한국현대미술대전 수상을 비롯, 전승공예대전, 동아공예 대전 등 20여차례 입상경력과 제2회 한국옻칠 공예대전 금상 및 10여차례의 국내외 전시회를 통해 기량을 입증했다.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작품에는 자개의 빛만 아닌 세계화를 부르짖는 장인의 모습이 담겨 그 빛을 발하고 있다. /2017년 7월 21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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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1
  • [명장을 찾아서] 보광요 조세연 명장, 고려청자의 빛깔·무균열 재현
    2009년 이천시 도자기 명장 선정…무균열 청자 이어 천목유약 개발 ‘올인’ 조세연 이천시 도자기 명장은 서울공업고등학교 요업과를 졸업하고, 1973년 송남 신상호 선생의 도방요에 입문, 이후 혁산 방철주 선생(동국요) 밑에서 청자 재현을 위해 성형·조각 등을 두루거친 후 1993년 보광요를 세웠다. 조세연 명장은 “저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흙을 빚고, 성형, 조작, 유약작업, 소성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도맡아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이 모두 작품이 되는 것이 아니고, 흡족한 결과물이 나올 때 비로소 보람을 느낀다.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자꾸 욕심이 생기고, 흙의 오묘함에 빠져들어 44년 외길을 걷게 됐다”고 말했다. 조세연 명장은 고려청자의 은은한 빛깔과 아름다움을 위해 혼과 열정을 받쳐 왔다. 그 결과 전승공예대전, 강진청자공모전, 황실공예대전, 이천도자공모전 등에서 다수 입상했다. 특히 2008년에는 황실문화재단의 선정하는 황실공예 명인으로 선정됐고, 이듬해인 2009년 이천시 도자기 명장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도자박물관에서 개최된 이천도자기 특별전 등 국내외 전시회 참여를 통해 한국 도예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조세연 명장은 40여년 오랜 세월 물레작업으로 숙련된 작가의 손놀림에서 생명과 탄생, 그 오묘함에서 상상할 수 없는 빛과 곡선미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조 명장의 작품을 보면 청자의 양각·음각 등의 기법으로 학, 매화, 목단 대나무 등 문양을 새겨 넣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조세연 명장은 지난 2000년대부터는 무균열 청자를 만들고 있다. 흙과 유약을 고온에서 녹이면 수축해 도자기에 균열이 간다. 그런데 조 명장이 직접 흙과 유약을 개발해 무균열 도자기를 재현, 창작하고 있다. 무균열 청자는 일반 청자에 비해 강도도 높아 몇 백 년이 지나도 빛깔을 보존할 수 있다. 조 명장은 “고려청자의 비색은 은은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저는 이러한 전통의 비색을 복원해 현대에 재현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해왔다”면서 “죽기전까지 마음에 흡족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굴의 도전정신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전통 청자의 재현에 공을 들이고 있는 조세연 명장. 그는 흙의 본질을 찾고 유약 개발에 끊임없이 연구한 끝에 천목유약을 개발, 다완 등 새로운 도자 창작에도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7년 2월 10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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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명장을 찾아서] 벤지양복점 박장일 대표, 맞춤양복 50년 장인의 손길
    칼라 폭 넓어지고 허리 라인 강조…고객 만족할 때 자긍심 느껴 명동에 위치한 벤지양복점 박장일 대표(사진)는 맞춤양복에 50여년간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다. 그는 양복 만드는 일에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해왔다. 박장일 대표는 “맞춤형 양복을 찾는 손님이 꾸준한 이유는 기계의 틀에 맞춰 사람의 체형을 획일적으로 입력해 만든 기성양복이 개인의 개성과 품격을 나타내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복을 입던 젊은이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이 들어간 맞춤 양복을 입어보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맞춤 양복은 단 한 사람의 고객을 위해 신체 치수 20~30여 곳을 꼼꼼히 재고 재단, 가봉을 통해 고객의 몸에 맞춰 정성스런 손바느질로 제작된다. 반면 기성복은 유행을 이끌지만 개개인의 체형을 일일이 맞춰주진 않는다. 신체의 3~4곳만 재고 가공하기 때문에 실제로 입었을 때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맞춤 양복은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체격, 나이, 직업 등을 고려하여 양복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그리고 내가 만든 옷을 입고 고객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의 뿌듯함을 넘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만끽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보통 대인관계가 많은 직장인이나 사업가들은 감색, 쥐색 등 어두운 색을 즐겨 찾기 때문에 수요가 꾸준하다. 최근 양복 트렌드는 칼라(collar)가 기존양복에 비해 1인치(inch)가량 넓어졌다. 또한 허리의 라인감이 강조되고 몸에 꼭 맞춘 FIT한 스타일이 강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벤지양복점의 주 고객은 주로 중장년층의 국내 정·재계 인사와 탤런트 김성환 씨와 故이주일 씨, 송해 씨 등 유명연예인들이다. 최근에는 남자다움과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고 싶은 20~30대 젊은 손님도 드물지 않다. 특히 벤지양복점을 찾는 손님들은 처음 방문했다가 단골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수제 맞춤형 양복점 중에서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30년전 개점한 이래 손님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서비스해 왔다. 그리고 ‘1:1 맞춤 양복입기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몇 년이 지나 고객의 체형이 변한 경우에도 양복을 수선해 애착이 담긴 양복을 오랫동안 입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래서 입소문을 듣고 한 번 방문한 손님이 단골손님으로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장일 대표는 양복 장인으로써 자신이 제작한 옷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래서 고객에게 당부의 말도 남겼다. 그는 “고급 양복이라고 옷장 안에만 보관하다보면 습기로 인해 옷감이 상하거나 주름이 지는 등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 가끔 바깥에 내어 햇볕에 한 시간씩 걸어두면 신상품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2017년 1월 6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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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명장을 찾아서] 세창 김세용 명장, 50년 청자에 담은 삶과 혼…도자예술 꽃 피우다
    투각에 매화·국화 등 문양 정교하게 표현…소장품 사회에 환원 예정 50년의 세월을 흙속에 영혼을 받쳐온 세창 김세용 명장. 그는 한민족의 얼이 서려있는 청자의 전승과 발전에 한평생을 받쳐온 인물이다. 김 명장은 일찍이 흙의 오묘함과 청자의 고고한 자태에 매료돼 이를 현대에 재현하고자 가마에 불을 지피며 4가지 원(願)을 세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자’, ‘가장 정교한 청자’, ‘가장 큰 청자’를 만들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정신과 혼(魂)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4가지 원(願)은 그의 이정표가 되어 수많은 시련과 시행착오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또한 교만에서 벗어나 도자魂을 불사르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태어난 청자들은 복잡하고 치밀한 구조속에서 온화한 기품과 화려함속에서도 세련되고 절제된 미(美)를 담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작품세계를 인정받으며 지난 2002년 대한민국명장(349호)으로 선정됐다. 김세용 명장은 “흙을 알아야 아름다운 도자기의 비색을 낼 수 있다. 그래서 흙과 천연재 유약을 직접 개발해 사용한다. 특히 도예가는 빼어난 기교 뿐 아니라 흙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명장에 의하면 우주의 생성원리는 ‘地水火風空’에 있고, 인간은 곧 우주이며, 청자는 곧 인간이다. 즉 청자는 살아 숨쉬는 생명체(=우주, 인간)와 동등하다. 이는 인간과 우주를 설명하는 불교의 이치에 흙이 도자기로 완성되는 과정에 대한 철학과 이치를 더한 것이다. 흙(地)은 물(水)과 불(火), 바람(風)과 만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공(空= 작가의 손길과 정신세계를 의미)의 이치가 더해져야 비로소 청자로 완성된다. 김세용 명장은 신상호 도예연구소에서 전통제작기법을 전수받아 1978년 독립, 이듬해 세창도예연구소를 설립한다. 독립 초기에 김 명장의 청자는 투박함을 나타냈지만, 이후 80년대 후반부터 이중투각과 같은 정교한 작품을 완성하는 등 독자적인 예술을 꽃피우고 있다. 김 명장은 “도예를 배우면 처음에는 선조들의 작품을 모방하다가 점차 자신만의 도자기에 접근한다. 투각도자기의 경우 매화·국화 등을 손과 칼로 문양을 하나하나 아주 작은 오차 없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했다”면서 “지난 ‘세계도자기엑스포 2001’에서는 국화 문양의 청자를 제작, 천년후에 개봉키로 한 타임캡슐에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인정받으며 스위스·일본 등 초정전시회를 통해 우리 청자의 예술성과 우수성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사람에게 혼이 있듯 불에도 혼이 있다. 도자기는 혼과 불이 어우러져 살아 있어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김세용 명장. 그는 이제 창작보다는 청자를 계승·발전·보존하는 데 힘쏟고 있다. 그래서 전통문화에 뜻있는 개인, 지자체, 기업 등이 미술관 설립에 나설 경우 소장 작품을 전부 기증할 계획이다. /2016년 12월 13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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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장인을 찾아서] 해암 장춘철 장인, 37년 나전칠기 외길…‘끊음질’ 명인
    해암 장춘철은 지난 1992년 제17회 전승공예대전 입선하며 그의 나전칠기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리기 시작하여, 2006년 제5회 한국옻칠공예대전 문화관광부 장관상 등 국내외 입상 및 전시 출품 경력이 무려 70여회에 이르는 나전칠기 장인이다. 자개일을 하던 친구에 이끌려 1979년 나전칠기에 입문한 그는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고, 단련을 통해 끊음질 작업을 주특기로 만들었다. 끊음질은 나전칠기의 자개를 얇게 갈아 머리카락처럼 켜내어 칼끝으로 눌러서 끊어 붙여 문양을 만들어 나가는 기법으로 작업에 많은 시간과 자수를 놓듯 섬세함이 요구된다. 장춘철 장인은 “나전칠기는 공예의 ‘으뜸’이다. 다른 공예는 단순작업이 많지만 나전칠기의 경우 복합작업으로 자개·칠·도안 등 삼박자가 맞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또 장석과 경첩등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나전칠기 작품은 각 분야들이 종합적으로 이뤄져 탄생하기 때문에 공정도 많아 160여가지나 된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좋은 작품을 할 때는 자개 일일이 선별해서 쓴다. 예를 들어 전복껍질은 크게 세가지 색으로 나뉘는데, 열근 정도를 놓고 선별하면 한 근정도 색이 좋은 게 나올까 말까다. 저는 끊음질이 주특기인데 지금 시장에는 오랜 작업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작품의 수요를 찾기 힘들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거의 사장시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전통공예를 활성화하기 위한 피부에 와 닫는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장춘철 장인은 지난 세월 오직 나전칠기를 위해서 연구하고 제작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왔다. 그는 나전칠기의 전통공예의 특성과 현대화를 위해 끊임없는 작품 구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장롱부터 이층장, 삼층장, 옻칠지갑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문화상품, 그리고 현대의 문명과 결합시킨 상품화에도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아울러, 장춘철 장인은 성남시 청소년 재단을 통해 체험교육 등으로 청소년들에게 나전칠기 공예를 전파하는데도 힘쏟는 등 전통공예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2016년 11월 24일 동아경제 성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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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명장을 찾아서] 토광 장동국 명장, 46년 도예외길…전통자기 재현
    김제 벽골제 창작 스튜디오…매년 수천명 발길 ‘새명소’ 부상 무형문화제 29호 사기장(분청도장) 토광 장동국 명장은 지난 2014년 제22회 대한민국 종합미술대전을 통해 명장(名匠)칭호를 받았다. 그는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5살 때 고려도요에 입문해 광주요, 해강청자 연구소, 석촌도예 등을 두루거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토광 도예를 설립했다. 이후 지난 2003년 전라북도 김제로 옮긴 후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을 빚어내기 시작해 지난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장 명장은 46년 도자기의 외길을 걸으며 상감기법과 역상감 기법 등 전통도예의 현대화와 자신만의 빛깔을 찾아 창작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의 작품은 고려청자의 화려하고 아름답고 웅장함과 신비로운 비색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현대적인 재해석이 담긴 문양을 입혀내는 등 도자기에 작가의 혼을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중국 등에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도예문화 계승발전에도 힘쏟고 있는 장 명장은 초·중·고 대학생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도예체험을 할 수 있는 벽골제 창작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매년 3000여명의 체험단이 찾아오는 등 후학 양성과 도예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정부·지자체가 문화와 관광을 연계한 관광단지 조성에 주력하고 있는데, 정부·지자체에서 좀 더 관심을 가져 지원·육성해 준다면 창작을 통한 인재 창출과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동국 명장은 “완벽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반복과 수련을 통해 옛 도자기를 완벽하게 재현해 보고, 그 위에 자신의 예술혼을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동국 명장은 도예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도록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2016년 11월 11일 동아경제 김상용 기자
    • 문화·레저
    • 명장초대석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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